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(문단 편집) == 전개 == 명칭이 '[[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]]'이지만, 정작 대부분의 전투는 폴란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. 앞서 설명했듯이 폴란드-리투아니아 국왕이 누가 되든지 아무 관심이 없었던 플뢰리 추기경은 스타니스와프 1세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소규모 병력을 보내줬을 뿐 스타니스와프 1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. 결국 스타니스와프 1세는 그단스크가 [[1734년]] 러시아-작센 연합군에게 공략당하자 [[동프로이센]]의 [[쾨니히스베르크]]로 달아났고 종국에는 프랑스로 달아났다. 그를 지지하는 폴란드 귀족들이 수차례 봉기를 일으키긴 했지만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진압되었고, 이후 폴란드는 전쟁 기간 내내 조용했다. 정작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 전선은 [[라인강]]과 [[이탈리아 반도]]였다. 프랑스는 [[1733년]] 10월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선전포고하자마자 로렌 공국을 점령하고 라인강을 건너 [[스트라스부르|슈트라스부르크]]를 침공했다. 하지만 오스트리아 본토를 치기엔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있어서 겨울에 라인강을 도로 건너 후퇴했다. 이에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대대적으로 증강해 라인강 방면 방어에 투입했고 지휘관으로는 [[오스만 제국]]과의 전쟁과 [[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]]에서 맹활약한 명장 [[사부아 공자 외젠]]을 선임했다. 그러나 외젠은 당시 80세가 넘은 노장이어서 과거와는 달리 군대를 적극적으로 지휘하지 못했고, 전력도 [[프랑스군]]에 비해 열세했기 때문에 방어로 일관해야 했다. 프랑스군은 그런 외젠을 상대로 밀어붙였지만 [[1734년]] 필립스부르크 공방전[* Belagerung von Philippsburg, 필립스부르크는 독일 바덴 [[뷔르템베르크]]주에 있는 소도시으로 독일에 큰 원전이 있다.] 중 지휘관인 영국의 베릭 공작 제임스 피츠제임스[* James FitzJames, 1st Duke of Berwick, [[제임스 2세]]의 사생아이다. 생몰은 1670 ~ 1734]가 전사해버리면서 기세가 꺾였다. 결국 라인강 전역은 필립스부르크 공방전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다.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군과 [[사르데냐 왕국]], 그리고 스페인 연합군이 대대적인 공세에 착수했다. 프랑스-사르데냐 동맹군은 총 5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 밀라노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 12,000명을 손쉽게 격파하고 밀라노를 공략했다. 또한 스페인군 4만 명은 파르마-피아첸차 공작 [[카를로스 3세|카를로 1세]]의 지휘하에 토스카나와 교황령을 거쳐 이탈리아 남부의 옛 스페인 영토를 회복해나갔다. 현지 오스트리아군 사령관 줄리오 보로메오 비스콘티는 본국에 지원을 호소했지만, 라인강 전역과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오스트리아는 이에 응하지 못했고, 결국 스페인은 [[나폴리 왕국]]과 [[시칠리아 왕국]]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. 이후 프랑스군은 여세를 몰아 만토바 공국까지 공세에 나섰지만, 프랑스가 북이탈리아 일대를 석권하는 걸 원치 않은 사르데냐 왕국의 비협조와 오스트리아군의 대반격으로 고전했고, 결국 북이탈리아 전역 역시 라인강 전역처럼 교착 상태에 빠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